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유당(일본, 2016년) (문단 편집) === 자유당 === 2016년 10월 2일, 당 자체에 대해 검토하겠다는 [[오자와 이치로]]의 발표에 따라 10월 12일 당명 변경과 함께 단독 대표 체재로 확정되었다. 하위 정치 단체인 '''야마모토 타로와 친구들'''과는 별도로 시작할 방침이라고 한다. 다만 한동안 당 홈페이지에는 오자와 이치로와 야마모토 타로가 당 대표로 같이 적혀있기도 했다. 2016년 10월 16일에 치러진 니가타 현 지사 선거에서 [[일본 공산당]], [[일본 사회민주당]]과 같이 추천한 [[요네야마 류이치]] 후보가 여권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추천한 모리 타미오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0/16/0200000000AKR20161016061900073.HTML?input=1195m|#]] 여담으로 오자와 이치로는 자유당이라는 이름을 많이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1998년 세워져서 2003년 민주당과의 합당(민유합병) 이전에 오자와 이치로가 창당한 정당이 자유당인데 예전 자유당 로고도 지금 자유당의 로고와 닮았고 글씨체는 완전히 똑같다. 1998년에 세워져서 2003년에 없어졌던 오자와 이치로 체제의 자유당이 부활한 셈이 되었다. --예전 당명 같은 병맛 이름보다야 훨씬 낫다-- [[다마키 데니]] 간사장은 생활보수를 실행한다고 당 기관지인 프레스자유에서 밝혔다. 그렇게 되면 1998-2003년 자유당과 성향까지 비슷해질지도 모른다. 2017년 7월 23일 센다이 시장 선거에서 [[민진당(일본)|민진당]], [[일본 공산당|공산당]], [[일본 사회민주당|사민당]], 자유당 야4당이 지원한 무소속 코리 카즈코 후보가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이 밀었던 스가와라 히로노리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2017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혁신 진영인 민진-공산-자유-사민당의 야4당 공조가 깨지고 말았다. 고이케의 [[희망의 당(2017년)|희망의 당]]과 반 아베 전선을 구축할지를 놓고 [[민진당(일본)|민진당]] 내부에서 갈등이 빚어져 민진당이 사실상 당 해체 수순을 밟게 된 것. 공산-사민당은 우익 성향이 강한 고이케와 연대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고, 결국 민진당이 [[입헌민주당(2017년)|입헌민주당]]과 희망의 당 입당파로 갈리면서 입헌민주-공산-사민 연대가 구성되었다. 다만 자유당의 중의원이던 [[오자와 이치로]]와 [[다마키 데니]]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리고 선거 결과 지역내 다져논 기반으로 각각 [[이와테현 제3구]]와 [[오키나와현 제3구]]에서 당선된 두 의원은 이후 다시 자유당에 입당해 자유당은 중의원 2석을 점유하게 되었다. 2018년 자유당 소속의 전 참의원 의원 [[슈하마 료]]가 2018년 4월에 열린 타키자와시장 선거에 입후보할 것을 표명하고, 7월 4일 자유당 이와테현 연합회 대표 대행을 퇴임한 후 11월 4일 고시된 시장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되었다. 그러나 오키나와현 지사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실시된 보궐선거에 자유당 소속 [[다마키 데니]] 의원이 의원직을 사임함으로서 출마하게 되었고, 이로써 일본 자유당은 중의원에서 회파구성도 불가한 오자와 이치로 1인의 단독원내정당이 될 위기에 처할 뻔 했으나, 입헌민주당에서 의원꿔주기를 감행하므로서 의석수를 다시 유지하게 되었다.[* DJ정부 때 민주-자민련 공동정부시절 비슷한 전례가 한국에서도 있었으니 참고하면 될 듯.] 그랬다가 2019년 4월 26일 [[국민민주당(2018년)|국민민주당]]과 합당하게 되면서 해산되었다. [[야마모토 타로]]는 [[레이와 신센구미]]라는 정당을 창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